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년 자크 루이 다비드 作 (침대에 등 돌리고 고개숙여 앉아 있는 사람이 수제자인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무릎에 손을 얹은 이가 절친인 크리톤)
소크라테스의 전통, 결국 디오니소스를 넘어섰을까?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깊은 영향을 남긴 사상가 중 한 명은 소크라테스(BC 469~BC 399)였다. 그는 이성의 힘을 신뢰했고, 합리성과 자제(self discipline), 자기의식과 중용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다. 인간의 정신에는 위계가 있으며, 그 정점에는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영역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았다. 반면, 감정과 본능, 직관적인 요소는 하위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철학자의 삶을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겼다. 예술가, 군인, 농부 등 육체적이고 직관적인 삶을 사는 이들보다, 깊이 있는 사색과 탐구를 추구하는 철학자의 삶이 더욱 가치 있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철학은 인생을 인도하는 등불이자, 혼란 속에서도 길을 찾게 해 주는 나침반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에 반기를 든 또 다른 철학적 흐름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디오니소스적 전통이었다. 블레이크, 니체, 하만, 로렌스, 융, 밀러와 같은 낭만주의 사상가들은 이성과 절제를 넘어선 삶을 찬양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논리적 사고보다도 열정, 감각, 그리고 본능이었다.
디오니소스적 전통은 인간 본능의 해방을 주장하며,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하며 사랑하는 삶을 이상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자기 절제와 반성을 오히려 인간을 속박하는 굴레로 여겼으며, 삶을 진정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성의 틀을 깨야 한다고 믿었다.
디오니소스의 별명 중 하나는 ‘호 리시오스’로, 이는 ‘해방시키는 자’라는 뜻을 지닌다. 그는 인간을 신중함과 절제에서 풀어주었고, 그 대신 황홀경과 열정, 감각적 환희를 선물했다. 디오니소스적 철학자들은 자기반성보다는 순간의 강렬한 경험을 찬미했다. 깊이 고민하기보다는, 사랑하고 춤추고 취하는 삶이 더 가치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소크라테스의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을 비웃으며, 지나친 반성이 삶을 위축시키고, 마치 현미경 아래에서 점점 말라가는 존재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삶이란 반성하면 할수록 그 생기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무한한 자유와 해방에는 끝이 없었다. 절제 없는 본능과 직관의 세계는 결국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다. 디오니소스적 삶의 추구는 처음에는 찬란하고 매혹적이었지만, 끝없는 욕망의 흐름 속에서 삶의 목적을 잃어버릴 위험을 안고 있었다. 한 번 해방된 영혼은 다시 규율과 이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계속 고집하는 이유는 그것이 신이 자신에게 준 사명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지혜와 덕에 대한 주제를 놓고 서로 대화를 나눠 무지를 일깨우고 자신의 혼을 돌보게 하는 것, 그것이 철학이고 그 철학을 통해 아테네인들을 오만의 미몽으로부터 깨어나게 하라는 것이 신이 자신에게 준 사명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믿었다.
흥미롭게도, 소크라테스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반복적으로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꿈을 꾸었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그는 이성과 자기절제 속에서 집착화된 페티쉬를 넘어서, 그 이상의 초월적인 어떤 것(혹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려고 음악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사도행전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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